일제때 완전히 파괴 된 것을 1965년 수습하였습니다. 원래 위치는 지금 자리에서 50m 위였습니다.기단부만 남아있고 몸돌과 옥개석은 없어졌습니다. 신라정강왕 때인 886년에 건립되었는데기단석의 중대석이라하는 기둥부에는 용과 구름이 새겨져있어운룡문의 시원으로 봄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