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범어사 석조


​주차안내소를 지나 어산교라는 다리를 지나 
일주문 쪽으로 올라가는 첫번째 문화재가 이 석조이다.
지금은 많이 파손되어 원형을 알수 없으나 
제각 연기문이 히미하게 나마 남아잇다.
이 석조는 원래 원주실 뒤에 있던 것은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.
전체 크기로 보면 해인사 법주사 석조 보다 크다. 
또 제작 시기는 상당히 이른시기로 추정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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돌길

석조 왼쪽으로 돌판을 깐 길이 있고 다시 그 왼쪽에 비전이 잇다.
이 돌길은 부산역에 깔렸던 돌이었다 한다.
부산역이 증개축 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해진 돌을 가져다 
범어사 마사토길을 포장 했다하니 
당시 부산시에서 불교와 범어사의 위상을 알수 있게 한다.   ​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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범어사 갑계록

범어사에는 조선말 불교의 현실을 보여주는 흔적이 상당히 많다.
자연석에  새겨진 수십기의 갑계록들은 
숙종 때 대대적인 중창후 유지 보수와 관련된 기록이다.
여기에는 승장등 당시 승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
조선시대 승려 조직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들이 발견된다.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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범어사 당간지주
​ 수곽에서 돌길을 따라 약 20m쯤 올라간 오른쪽 연못 위에 두줄기 돌기둥이 서 있다.
당번 지주를 세우는 용도로 사용되어 당간지주라 한다.
통일신라기 유물이다.
지금은  사용되지 않는다.
돌기둥 사이에 쇠나 나무로된 당간 기둥을 세우고 그 꼭데기에는 용두등으로 장식하였는대 
사찰에 큰 법회가 있을 경우 여기에 당번을 걸어 장식 했었다.
현재 이 당간지주는 기둥 두 줄기외에는 원형을 알수 없다.
특히 하부 기단은 둥글게 일본식 석축에 쌓여 았고
또 현재는 땅 또는 기단에 덮혀 있어야할 부분이 드러나 있으며 지주 사이의  기둥 밭침도 없다.당간지주등 원형이 남아 있는 당간지주들을 참고로 하면 하부에 기단부가 있었을 것이다.
법주사, 담양, 나주 읍성 동문 밖등에 아직도 이 
철당간과 지주와 기단 장식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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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주문 전경

당간지주를 지면 다음은 사거리다. 
오른쪽은 옛 박물관이고
오른쪽 길로 올라가면 부도전 대성암 안양암으로 가는 길이다.
이갈림길 모둥이에는 하마비가 있고.
중앙 돌길로 가면 바로 일주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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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마비

여기에서 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올라오라는 뜻이다.
조선시대 숭유억불의 분위기에서 유생이나 벼슬아치들이 
사찰에 들어와 무리한 일을 하기도 하였다.
멀을 타고 법당 입구까지 올라 갈 뿐만 아니고 신을 신을 채 법당에 들어가거나
혹은 술이나 육식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한다.
이 하마비는 주 통로에서 그러한 행위를 막으려는 시도로 설치 된 것이다.
이 하마비 왼쪽 길은 금정산성으로 가는 길이므로 군인들이 말을 타고 오르기도 했을 것이다.
따라서 이 하마비 앞에서 일주문 쪽으로 가는 경우에 한정하여 
말에서 내리도록 했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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범어사 일주문


 조계문이라 한다.
이 문을 세운 정확한 시기는 알 수는 없으나 
조선 광해군 6년(1614)에 묘전화상이 여러 건물을 고쳐 지을 때 함께 세운 것으로 추측한다.
이후 정조 5년(1781)에 백암선사가 현재의 건물로 보수했다. 
앞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(人)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.
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.
이 일주문은 주춧돌 위에 놓인 높은 돌 기둥 위에 짧은 나누 기둥을 세웠다. 
이런 구조로 삼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사찰의 문이 한 칸인데 비해 
세칸으로 조성되어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.
​삼해탈문은 공문空門 무상문無相門 무원문無願門이다.
이 문은 사찰의 일주문이 가지는 기능적인 건물로서의 가치와 함께 모든 구성 부재들의 적절한 배치와 결구를 통한 구조적인 합리성 등이 시각적으로 안정된 조형 및 의장성을 돋보이게 한다. 
한국전통 건축의 구조미를 잘 표현하여 우리나라 일주문 중에서 걸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.
좌측과 우측의 현판인 금정산범어사, 선찰대본산은 일제시기는 서예가 김성근이 썻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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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왕문 

일주문 다음은 천왕문이다. 사천왕문이라 하는데 정면 세칸의 맞배집이다.
정면 기둥에는 네 폭의 주련이 있고 안쪽 통로에는 사천왕이 배치 되어있다.
주련은 오른쪽 부터 
"帝釋天王慧鑑明(제석천왕혜감명) 제석천왕은 지혜고 살펴 밝으니 
哀愍衆生如赤子(애민중생여적자) 중생을 갓난아기 처럼 애민히 여겨
四洲人事一念知(사주인사일념지) 사대주의 사람과 일을 한 찰나에 아내
是故我今恭敬禮(시고아금공경례) 이러한 까닭으로 내가 지금 공경하여 예한다네" 라했다. 
이는 석문의범 신중 작법 탄백의 내용으로 33천의 제석을 찬탄하는 게송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