범어사 일주문
조계문이라 한다.
이 문을 세운 정확한 시기는 알 수는 없으나
조선 광해군 6년(1614)에 묘전화상이 여러 건물을 고쳐 지을 때 함께 세운 것으로 추측한다.
이후 정조 5년(1781)에 백암선사가 현재의 건물로 보수했다.
앞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(人)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.
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.
이 일주문은 주춧돌 위에 놓인 높은 돌 기둥 위에 짧은 나누 기둥을 세웠다.
이런 구조로 삼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사찰의 문이 한 칸인데 비해
세칸으로 조성되어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.
삼해탈문은 공문空門 무상문無相門 무원문無願門이다.
이 문은 사찰의 일주문이 가지는 기능적인 건물로서의 가치와 함께 모든 구성 부재들의 적절한 배치와 결구를 통한 구조적인 합리성 등이 시각적으로 안정된 조형 및 의장성을 돋보이게 한다.
한국전통 건축의 구조미를 잘 표현하여 우리나라 일주문 중에서 걸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.
좌측과 우측의 현판인 금정산범어사, 선찰대본산은 일제시기는 서예가 김성근이 썻다.